공수창 감독의 알 포인트
不歸! 손에 피 묻은 자, 돌아갈 수 없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벗어날 수 없는 땅
……
저주의 주문처럼
계속되는 업보
공업(共業) 불살생(不殺生) 교훈 담아
월남전에 대한 해원상생 위령제
2004년 개봉작 〈알 포인트〉는 포화가 빗발치는 월남전 전장으로 돌아가 벌이는 ‘해원상생(解怨相生)’의 한 판 굿판 같은 영화다. 이 영화는 한국공포영화의 정점에 서 있다.
최근 한국영화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공포영화의 성장이다.‘장화, 홍련’‘4인용식탁’등은 가족해체에 대한 트라우마이고, ‘살인의 추억’과 ‘복수는 나의 것’은 파시즘에 대한 악몽이다. 이처럼 한국공포영화에서는 사회구성원 전부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
충무로에 뒤늦게 근대화 담론이 형성된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거명한 영화들은 근대화의 부조리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피해망상을 극대화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주목할 만한 것은 영화를 만든 감독들이 대부분 근대화의 기치를 올리던 1960년대에 태어났다는 점이다. 감독들은 폭력과 광기로 점철된 유년기의 넋두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영화 〈알 포인트〉는 근대화 담론의 핵심 중 하나인 월남전을 전면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간단히 줄거리를 살펴보자.
1972년 막바지에 이른 베트남 전. 사단본부 통신부대의 무전기에는 작전 지역명 ‘로미오 포인트’(알 포인트)에서 구조요청이 계속 들려온다. 구조요청은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소대원들에게서 온 것이다. 최태인 중위(감우성)를 주축으로 하는 소대원들은 병사들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물을 확보하기 위해 알 포인트로 향한다. 최태인 중위는 시내 사창가에서 벌어진 총기 사건 기록을 지워준다는 조건으로 작전에 투입됐다. 9명의 소대원들도 성병에 걸렸다가 병원에서 급작스럽게 임무를 부여받았다. 억지로 급조된 소대원들은 길을 가던 중 나뭇잎에 가려진 낡은 비문을 읽고 알지 못할 두려움에 몸서리를 친다. 비문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다.‘손에 피 묻힌 자, 돌아갈 수 없다.’ 목적지를 찾아가던 중 대나무 숲에서 벙커 속의 베트콩과 총격전을 벌인다. 벙커 속에는 나중 보니 소녀만 죽어 있다. 어렵게 도착한 목적지에는 낡은 사원이 서 있다. 사원에는 미군들이 있고, 그들은 유령처럼 사라진다. 소대원들은 행방이 묘연한 병사들의 발자취를 쫓으면서 조금씩 미쳐간다. 그들은 결국 서로의 손에 죽어간다.
영화 속에서 9명의 주인공들은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다. 그리고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것은 죄의식이다. 사라진 병사들의 뒷모습의 환상을 목격하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곡두처럼 형체가 있는 듯 없는 것, 그게 바로 월남전의 명분이었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영화 속에서 알 포인트에 발을 디딘 인물은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고 만다. 마을 지역주민들이든, 베트남을 침략했던 프랑스군이든, 미군이든, 그리고 한국군이든….
폭력과 광기의 나날 속에서 점차 미쳐 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프란시스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을 떠올리게 한다. 다소 다른 점이 있다면 〈지옥의 묵시록〉에서는 적(敵)이 제국주의라면 〈알 포인트〉에서는 적이 없다는 것이다. 주인공들은 서로가 서로의 적이 된다. 바로 공업(共業)을 일컫는 것. 물론, 공업(共業)은 한 단체 구성원이 함께 짓는 업을 말한다.
주인공들은 모두가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과 싸워야 하는 인물들이다. 이 영화의 미덕은 당시 베트남 인민들에 대한 참회와 함께 오지에서 죽어간 우리 군인들의 원혼에 대한 천도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은 결국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고 저주의 주문처럼 모두들 원귀가 되어 머나 먼 이국 땅을 떠돈다. 그들은 손에 피를 묻혔기 때문에, 불살생(不殺生)의 계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뫼비우스 띠처럼 영겁회귀(永劫回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응오 기자 arche@jubul.co.kr
▩ 인터뷰 - 공수창 영화감독
태백 청원사 시절 뜻 깊어
“젊은 시절에는 월남전이라고 하면 월남민들에게 죄송한 마음밖에 안 들었는데 현지에서 촬영을 하면서부터는 월남 참전병들도 희생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월남민들이나 우리 군인들이나 가난한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에 목숨을 담보로 싸워야 했을 테니까요. 더군다나 죽어서도 이역만리 타국 땅을 떠돈다 생각하니 마음이 저릿했어요.”
공수창 감독은 촬영당시 소감을 이같이 밝히고 “해원상생의 위령재 같은 영화를 찍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가 월남전에 대한 관심을 가진 것은 영화 〈하얀전쟁〉의 시나리오를 집필하면서부터다.
“알 포인트는 황석영의 단편소설 〈탑〉에 나오는 지명입니다. 젊은 시절 독립영화 집단 ‘장산곶매’에서 활동하면서 월남전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전쟁영화를 찍으려고 했는데 흥행문제를 고려해서 공포영화로 장르를 고쳤습니다.”
그는 이어 영화 촬영장소를 베트남이 아닌 캄보디아로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베트남은 이미 많이 근대화가 이뤄져 이전의 베트남 풍경을 그릴 수 없었습니다.”
그는 불교와의 인연에 대해 “대학생 시절 강원도 태백 청원사에서 반년 동안 머물면서 공부를 한 적 있다”며 “틈 나는대로 숭산스님의 책을 즐겨 읽는다”고 말했다.
한양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독립영화 집단 ‘장산곶매’에서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집필.
<하얀전쟁> <텔미썸딩> <링> 등 공포 스릴러 시나리오 집필.
<알포인트> 감독.
주간불교 839호 2005년 3월
http://www.bulgyonews.co.kr/news/12269
